[끝없는 월요일 – 7화]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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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에 필자는 부모님과 함께 강남 테헤란로를 지나고 있었다. 아버지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던 중 서초역 언저리쯤에서 아버지가 물으셨다.

“그래, 넌 회사 다니면서 맨날 돈, 돈 벌어야 한다고 떠드는데 너의 목표가 도대체 얼마냐?”

나는 대답했다.

“뭐… 아직 구체적으로 정확한 금액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돈 좀 벌었다고 할라면 한 100억은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00억이라, 그래 100억 정도면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에 진입할 수준일 것 같다. 꽤 좋은 집을 구입하고, 남는 금액으로 예금보다 조금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안전한 투자를 한다면, 넉넉한 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수입이 생길 것이고, 내가 원하는 노동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리라. 수입을 잘만 활용한다면, 나의 자식들에게도 비슷한 수준의 노동선택권도 대물림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아버지의 반응은 솔직히 좀 놀라웠다.

“100억? 야, 요즘 세상에 100억이 돈이냐? 젊은 놈이 그렇게 포부가 작아서 어디다 쓰겠냐?”

참 충격적인 반응이셨다. 아버지 또한 100억은 벌어보지도 못하셨고, 당연한 생각이지만 앞으로도 그 금액에 도달하지 못 하실 것이다. 속으로는 그냥 장난을 치시거나 허세를 부리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거 100억이 얼마나 큰 돈인데, 너무 우습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 다음 말씀은 더 놀라웠고, 그 말씀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야, 이 옆에 건물들을 봐라. 저 건물들이 한 개에 얼마나 하겠냐? 당연히 100억은 넘어보이지? 세상에 100억 정도 번 사람들은 수 없이 많겠지? 어떻게 배포가 저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 정도 되는 걸 꿈으로 가질 정도 밖에 안되냐?”

그렇다. 아버지와의 이 대화는, 사실 노동선택권의 주제와는 거리가 좀 있다. 하지만, 이 대화를 사용해서 노동선택권을 생각해보자. 서초역에서 역삼역까지 가는 동안 주변의 수많은 건물들은 어림짐작에 최소 100억원은 넘는 자산가치일 거다. 그 중 꽤 많은 건물들은 1,000억도 넘어가는 것들일 것이다. 이 건물들을 모두 대기업이나 재벌가가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많은 건물 중에 개인 소유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강남이 아니라, 서울시내 아주 많은 곳에 100억이 넘어가는 건물들은 수두룩하다. 이 건물들이 개인소유이거나 개인이 임대업을 목적으로 만든 기업의 소유라면, 그 건물들의 임대소득은 그들의 생활비를 충당하고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남을 것일테고, 이 사람들 모두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통계적으로 연구해본 적은 없지만, 수 백 수 천 정도의 극소수는 당연히 아니지 않겠는가?

그들은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노동선택권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100억–1,000억 정도를 보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에 드러날 만한 기업이나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일반사람들과 비슷한 차림을 하고 다니며, 심지어는 우리같은 일반인들보다도 더 추루하게 하고 다닐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는 돈을 많이 지닌 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많아서, 자신의 자산을 드러내지도, 주변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 섞여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우리가 알아보지 못한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며, 심지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한국부자보고서표지참고로, KB 경영연구소에서 발행한 2015 한국 부자 보고서에 의하면, 2014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개인이 약 18만 2천명이고, 이들은 평균 22억 3천만원의 금융자산을 보유한다고 한다. 또한,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전체 개인자산의 약 43.1%를 차지한다고 하니, 개인자산이 25억원 이상인 사람이 약 18만 2천명인 것이고, 이들의 평균 개인자산은 50억이 넘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자산이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 주변에도 몇몇 보유자산 가치 100억이 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금융자산만 10억을 넘게 보유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들은 저 18만명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이나 부동산은 절세 등의 목적으로 대부분 법인 소유로 되어있을 것이고, 이러한 법인들은 대부분 비상장, 비공개 기업일 것이므로, 그 법인들을 소유한 사람들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인구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저 18만 2천명에 속하지 않은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자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개인이 수십만명이면, 그 가족들의 숫자를 포함하면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자들은 아마도 1백만명, 혹은 그 이상도 될 수 있지 않을까? 10만명이건, 100만명이건, 당신이 생각하던 숫자보다는 훨씬 더 큰 숫자이지 않은가? 여전히 오르지 못할 나무로만 보이는가?

 

 


[끝없는 월요일 – 6화] 노동선택권에 의한 계층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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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선택권을 이용하여 계층을 분류하면, 1) 노동선택권 미보유자, 2) 일반노동선택권 보유자, 그리고 3)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으로 분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었다. 이로 분류된 각 계층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노동선택권 미보유자

[끝 없는 월요일 – 3화] 노동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언급된 필자의 친구 및 필자, 그리고 필자 주변의 수 많은 사람들은 노동선택권 미보유자에 포함된다. 우리와 같이, 현재의 소비수준과 향후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동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분류에 해당되므로, 굳이 따로 예를 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2)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

앞서 언급하였듯이,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는 자기 자신은 노동을 지속하지 않아도 소비를 감당할 수 있지만, 자신이 보유한 노동선택권을 대물림할 수는 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공무원생활을 30년 가량 하다가 최근에 정년퇴임하신 분을 생각해보자. 자식들은 장성하여 더이상 부모의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 없는 경우라면, 이 사람은 노동선택권 보유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 저축한 돈으로 구입한 아파트 한 채와, 보유한 어느 정도의 금융상품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매달 꾸준히 들어오는 공무원 연금이라면, 관리비를 비롯한 각종 생활비를 지출하고도 상당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수 있다. 이 분들은 필요에 의해서 노동을 유지해야 할 필요는 없다.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사학연금이나 교직원 연금, 혹은 충분한 연금보험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약간의 부동산 임대수입도 될 수 있고, 꾸준하게 투자한 기업의 주주지분에서 발생하는 배당수입도 가능할 것이고, 안전한 채권투자나 예금으로부터의 현금흐름도 물론 가능하다. 직접 투자하고 위탁으로 운영하는 식당이나 레스토랑의 꾸준한 현금흐름도 마찬가지이고, 커피숍이나 다른 상가들에서의 현금흐름도 그 사업을 운영하는데 추가적인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상태이고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창출된다면 이 또한 충분하다. 이와 같이 꾸준한 현금흐름을 보유한 사람들은 굳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노동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으므로 노동선택권을 보유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

이 계층은 굳이 계층으로 표현하였다. 우선 진입하기도 힘들지만, 일단 진입하고 나면 그 상태를 유지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주변에서 쉽게 찾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상당수가 존재한다. 그들은 일반인보다 월등히 많은 자본력을 가지고 자신의 노동력을 공급하여 얻을 수 있는 노동소득보다 더 많은 자본소득을 얻고 있다. 이러한 자본소득이 충분하기에, 자신이 소비하는 부분을 제외 한 후, 상속이나 증여를 고려하여도 그 다음 세대로 지금 현재 수준의 혹은 그보다도 더 많은 자산을 물려줄 수 있으며, 그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 등도 노동선택권을 보유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이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이 지극히 극소수이고, 또한 우리가 그들의 계층까지 오를 수 없다고 쉽게 단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황태자라 불리는 이재용, 땅콩회항으로 구설 수에 올랐던 조현아나, 아니면 최씨, 구씨나 허씨 집안 등의 재벌가의 2세나 3세이어야만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면, 지극히 극소수이고 오르지 못할 나무로 보이는 것도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인 부자여야만 노동선택권을 보유하는 것일까?

필자 주면의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계층에 대한 용어는 필자의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현대사회의 계층 구조는 아래의 그림인 듯 하다.

피라미드5

즉, 극소수의 재벌과 일반사람들로 분류하고, 그 중간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단절된 것으로 느껴서 아무나 오를 수 없는 단계라고 느끼는 듯 하다. 또한,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다고, 스스로가 현재 상태, 즉 노동을 팔아서 삶을 유지하여야 하고 이를 대물림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듯 하다. 그러기에 재벌가의 횡포 및 비도덕적 행동들에 대해서 불평 불만을 토로하고는 있지만, 자신이 좀 더 도전적이고 노력해야 오를 수 있는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으로 오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주변에서 볼 수 있고 그나마 손 쉬워 보이는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 수준에서 만족하려 하며, 땀 흘려 노동하는 것이 보람이다 등의 말을 인용하여 자기 자신을 위안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노동 자체를 신성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위의 구름낀 빈 공간에도 분명히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끝없는 월요일 – 5화] 현대 자본주의 제도 下의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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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제도가 유지되는 현대 사회에도 계급이 존재할까? 각 계층간의 이동이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 한 것은 아니기에 계급사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라는 분류는 하기 힘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을 둘다 누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에게는 노동소득이 주소득이지만, 은행예금, 주식투자 등의 금융거래로 부가소득을 얻는 경우도 있고, 상가, 아파트, 오피스텔 등으로 임대소득을 얻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계층은 존재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층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금융자산 10억 이상, 연 수입 1억 이상 등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부자를 정의, 이 정의에 의해 사회의 새로운 계층을 설명하려 하지만, 충분한 기준이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사람은 20-30억대 자산가라 할 지라도 일에 쫓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방에서는 20-30억대 자산가라 하면 굳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여유와 그 자산의 상당부분이 상속도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선택권 (Labour Option) 이라는 개념으로 현대사회의 계층을 분류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래와 같이 계층을 분류할 수 있다.

노동선택권의 개념을 설명하자면, 간단히 말하여서 노동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즉, 1) 노동선택권을 보유한 자는 스스로 노동을 것인지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있는 사람이며,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2) 노동선택권 미보유자는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지속하여야만 하는 사람이다.

노동선택권 보유자는 다시, 1)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3)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자로 분류될 수 있다. 즉, 노동선택권 보유자들 중, 해당 세대가 노동선택권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그 자식에게 상속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가 있을 것이고, 반면에 노동선택권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지속적으로 다음 세대에게 상속할 수 있는 계층이 존재 할 것이다. 이를 모두 포함하면 아래와 같은 계층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laboroption1

캘리포니아 대학의 밸러리 레이미 (Valery Ramey) 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네빌 프랜시스 (Neville Francis) 는 1900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서의 근무시간, 가사활동, 여가시간, 수업시간등을 조사해 통계를 냈는데 105년 동안 휴식시간은 결코 늘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부르주아 혁명 이후에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으로 구분되던 계급사회는 그 경계가 모호해짐으로 인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되긴 하지만, 여전히 그 경계를 넘어서기 힘든 계층사회가 존재한다. 사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기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체계의 전폭적인 변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선택권을 물려받지 못한 노동자 계층은, 부르주아 혁명 직후의 노동자계급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노동을 팔아 생활을 유지하여야 하며 그들의 삶은 적어도 근무시간 대비 휴식시간 기준으로는, 지난 100여년 동안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반인이라 부르는 우리 노동선택권 미보유자들은,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까지는 오를 수 있을지 몰라도,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까지는 웬만해서는 오르기 힘들다. 끊임없는 노력과 계획, 그리고 상당한 운도 따라줘야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한 세대가 은퇴 시점 언저리에 노동선택권을 보유하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2세와 자손들은 다시 노동시장에서 노동을 팔아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노동자 계층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끝없는 월요일 – 4화] 자본가 계급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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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는 서양의 문화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수용하면서 일어났다. 갑오경장과 을미개혁 이후, 신분제도가 폐지되기 시작하면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개최되고 노비 해방을 결의, 시민운동을 해 나갔었지만 1899년 황실에 반역하는 단체로 몰리는 등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 했다고 한다. 이후, 일제시대에 먼저 서양화된 문물을 지닌 일본과 기타 외세의 영향을 받으면서 계급사회가 사라졌기에, 현대 사회의 사회계층을 이해하려면 서양의 부르주아 혁명에 대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french1부르주아지 ( Bourgeoisie) 란 자본가 계급을 일컫는 말이다. 중세 시대 도시에서 생활하던 프랑스 시민들은 농사보다는 상업이나 공업에 종사하는 상공업자들이 대부분으로 “성 안에 사는 사람들” 이었다. 이들이 17~18세기 사유재산을 가지게 되면서, 왕이나 귀족들의 무분별한 세금부과에 반발, 다양한 혁명을 일으키면서 시민사회가 발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노동 이외의 생산수단을 보유한 시민들이었기에 유산계급, 혹은 자본가라고 불리게 된다.

무산계급이라 불리는 프롤레타리아 (Proletirai) 는 독일어로, 라틴어인 자식 (Proles) 라는 말을 그 어원으로 하며, 자식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들, 즉 노동자 계급은 유산계급에 의한 착취로 러시아 혁명과 같은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공산주의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 되었다.

자본가 계급은 경제학적으로 생산의 2 요소라고 불리는 자본과 노동 중, 자본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노동자 계급의 노동과 결합하여 자본소득을 창출해 왔다. 한정된 노동을 공급하여 얻을 수 있는 노동소득에는 한계가 있는 반면, 자본은 무한히 증가할 수 있으므로, 자본소득으로 그들의 자본을 더욱 축적시킬 수 있으며, 이론적으로 끝없이 증가할 수 있다.

반면 부르주아 혁명 이후이건 현재이건, 노동자는 유한한 자원, 즉 시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을 무한히 사용할 수 없다. 그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24시간 이상 일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임금을 지급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교환가치는 임금이며, 이 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비 및 양육비용과 기능 습득에 드는 비용을 합한 금액, 즉 노동자가 매일 건강하게 다시 일할 수 있는 상태로 육체적, 정신적인 재충전을 시켜줄 수 있을 정도의 필요한 금액이라고 표현한다. 생산활동으로 인한 이윤의 대부분은 자본가가 차지하고,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임금만을 지급받는 노동자들은 필요한 지출을 하고 나면, 여분의 금액을 모아서는 생전에 자본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산의 필수 요소인 자본은 자본가와 노동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부르주아 혁명 이전의 귀족과 같은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계급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부익부 빈익빈이 될 수 밖에 없었기에 새로운 계급이 탄생하게 되었다.


 

 

[끝없는 월요일 – 3화] 노동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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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는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대기업을 다니는 아버지 밑에서 강남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단한 노력으로 지방의 유명 공대에 1997년 입학하여, 전기/전자/컴퓨터공학을 전공하였다. 물론 대학생활도 그다지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대학생 과외도 했으나,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기간을 포함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2004년이었고, 졸업 전 취업 준비에 충실했던 그 친구는 누구나 부러워할 국내 굴지 대기업의 전자회사에 취업하였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났다. 필자와 마찬가지로 그 기간동안 그 친구는 결혼을 하였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다. 수 년전 그 친구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금확보를 위해 이리저리로 발품을 팔던 때가 생각난다. 결혼식 비용, 전세자금 등을 마련하느라, 회사에서 직원에게 지원해주는 대출금 위주로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아직 미혼이었고, 약간의 저축이 있었던 필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자기 스스로 구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모자라게 된다면 긴급하게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었다. 믿는 친구이기에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말했었고, 그럴 준비도 해놓고 있었지만, 그 친구는 빠듯하게나마 스스로 모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필자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회사는 수도권에 있는지라 값 비싼 강남에는 그들의 보금자리를 틀 이유도 없었지만, 강남에 살만큼 여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대기업이라지만, 대략 연 7천만원 정도의 수입으로 대출이자와 두 아이의 교육비, 그리고 생활비를 지출하고나면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은 많지 않다. 78년생인 그 친구는 만 65세 이후에나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겠지만, 만 60세까지 근무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거의 없다. 경쟁은 심하고, 임원자리는 부족한지라 임원까지 승진을 못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만 55세가 되기 전에 싫으나 좋으나 퇴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하고 있는 일이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지만, 매일매일 출근하는 것이 힘들지만, 그리고 그 이후에 필요한 자금마련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이 친구에게는 하고 있는 일을 관둘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즉, 노동선택권이 없다.

필자의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고, 위 이야기 속의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그리고 지금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그리고 보다 나은 주거 및 교육 등의 생활환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갖은 힘을 다하고, 저녁에는 거래처다 내부회식이다 술자리에서 몸을 상하거나 곧 다가올 프로젝트 마감을 위해 야근을 하는 것이 흔하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고사하고 가족을 위한 시간도 부족하다. 하지만 현실은 더 비참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벌어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관둘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금여력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고, 대부분이 정년 이전에 퇴사를 하게 된다면 심각한 경제적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아니, 정년까지 버텼다 하더라도 상황이 그다지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노동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지속해야 하는 필요조건이고, 그러기에 이러한 상황에 처한, 노동선택권을 보유하지 못한 우리에게 월요일은 끝없이 돌아온다.


롯데의 경영권분쟁과 금융소비자원의 불매운동

Lotte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당부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필자는 롯데그룹 및 그 소유주들인 신씨 일가를 옹호하려는 입장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여느 재벌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그 기업지배구조나 고질적인 정경유착,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선되어야하고, 더 투명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이 우리나라 자본주의 질서 확립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롯데家의 이야기로 연일 언론이 시끌벅적하다. 알고 보니 그 소유주들이 한국말도 어눌한 일본 사람들이더라, 기업의 순익이 상당 부분 일본으로 넘어가는 구조더라, 아예 일본회사라고 봐야한다더라, 기업지배구조가 그 어느 회사보다 불투명해서 순환출자를 분석하기조차 힘들더라 등등 다양한 비판과 실망섞인 기사들이 연일 실시간 검색창에 오르고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필자가 알고 있던 롯데라는 기업은 이랬다.

  • 제과를 중심으로 관광, 건설산업 및 기타 다양한 산업에 문어발식 확장을 한 대기업집단
  • 재일교포인 신격호 회장이 일본에서 설립해서 다시 한국으로 역진출한 기업집단
  • 기본적으로 주식공개를 안 하는, 폐쇄적인 경영스타일을 유지하는 비상장 원칙의 기업집단
  • 일본과 한국 양국에 프로야구 팀을 후원하는 기업집단

사실 이 정도였다. 롯데라는 기업이 순수 우리나라 기업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그 사실 자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롯데캐슬 아파트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인기 아파트이고, 먹거리 이것저것 만들고, 롯데월드는 어렸을 때는 종종 갔었지만 지금은 나이들어서 가기도 좀 뭐한 곳이고, 롯데시네마도 자주 이용하진 않았었지만 가끔 있으면 갔었고… 뭐 그 정도였다. 그런 기업에서 형제간에, 가족간에 경영권분쟁이 일어났고,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다. 어차피 나와는 별로 관계도 없는 일이려니 하고 있었고, 신동빈이 첫째인지 신동주가 첫째인지, 누가 누구 편인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었다.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재벌 집안 내의 경영권분쟁이 그 기업이 어느 나라 기업이냐에 대한 논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매운동이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사실, 지난 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즈음해서의 태도와는 확실히 다른 언론의 태도부터 관심이 가기 시작하긴 했었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에는 대부분의 언론들이 재벌의 경영권승계를 위해 소수주주의 권익 침해보다는 엘리엇이라는 외국계 투기세력에 대한 애국심 코스프레로 대놓고 이씨 일가 편을 들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롯데家의 경우에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모든 언론이 비판적인 기사만 쓰고 있었기에 그냥 롯데는 힘있는 광고주가 아닌가 보구나, 언론과 이해관계가 별로 없나보구나 정도만 생각했고, 그들이 충분히 비판하고 있기에 필자가 별도로 비판할 이유도 별로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좀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다. 지난 십수년간, 경영권분쟁을 한다고 불매운동을 했던 경우는 기억에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경영권분쟁은 보통 주식시장 참여자들에게 좋은 재료가 되고, 주가는 보통 상승하는, 전형적인 호재로 작용한다. 거기다가 이번에 불매운동을 주동하는 두 단체는, 금융소비자원이란 들어본 적 없는 사단법인과 소상공인연합회라고 한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그간 롯데마트로 인한 골목상권 논쟁, 롯데 제품들의 떠넘기기 등으로 쌓였던 불만이 지금 터져나왔다고 생각해보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금융소비자원은 도대체 롯데의 불매운동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금융소비자원의 소개글을 보니,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다.

“금융소비자원은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와 합리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며, 금융산업과 산업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롯데불매운동그리고, 옆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신력이 있는 기관이라기에는 뭔가 섬뜩한 느낌의 불매운동 공지가 떠 있다. 금융소비자원이라는 단체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금융소비자와는 별로 관계 없어 보이는, 롯데의 경영권분쟁을 계기로 재벌의 양아치 행태에 대한 심판이란다. 국민과 시장이 ‘가족의 치부 수단’이라고 소비자가 심판해야 한다고 한다. 뭐, 금융소비자와는 관계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 기업지배구조가 더 나아져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다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은 갈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들의 불매운동은 오히려 롯데그룹의 주가를 하락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고, 금융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일부 소수주주의 손해로 연결될 것이다. 뭐 그래도… 그렇다 치자.

이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아래 금융소비자원의 보도자료 목록에는, 보다시피 정작 금융소비자원이란 곳이 더 관심가지고 열심히 활동했었어야 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관련해서는 단 한 건의 보도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수주주의 권익에 대한 언급이라던가 합병의 부당함 등에 대해서는 커녕, 그 합병에 대해서는 찬성이건 반대건 그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았었다. 왜, 금융소비자원이라는 단체가 금융소비자보다 일반 소비자의 불매운동에 더 적극적일까?

 

금융소비자원알고 보니 일본기업이니 사지 말아야 한다고? 이 역시 금융소비자와는 별 관련 없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롯데그룹의 제품들은 대부분이 Push Marketing을 하는 제품들이라서 삼성전자의 가전제품이나 현대자동차의 자동차 같이 고객이 직접 찾아가서 구매해야하는 고가의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소매채널에 제품을 더 많이 깔아서 사람들의 손에 가까이 닿게 하는 것이 그 성공의 열쇠이다. 소비자는 마가레트나 빼빼로 같은 상품은 구매시점에 선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언제 국산 과자라고 국산 음료라고 국산품 애용을 외치면서 사먹어 본 적이 있는가? 가게에 가서 눈에 띄는, 그 순간순간 맛있어 보이는 과자나 음료를 고르는 경우가 보통 아닌가? 솔직히, 마가레트나 빼빼로가 롯데 제품인지 아닌지 신경도 안 쓰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아니면, 롯데마트가 한국 기업인 줄로 알고는 있었다지만, 코스트코 대신 롯데마트 가면서 애국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을까? 맥도날드 햄버거 대신 롯데리아 버거 먹으면서 국산품 애용이고 국내 기업 물건 팔아준다고 생각하면서 먹었었나?

불매운동을 하건, 비판을 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리고, 필자도 그로인해 롯데라는 재벌의, 그리고 국내 재벌들의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면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왜 삼성 때는 아무말도 못하고 있던 단체 및 언론들이 롯데 때는 봇물터지듯이 떠들기 시작하는 것인가? 과연 당신들은 객관적인 단체이고 언론이며 같은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