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월요일 – 9화] 노동선택권을 보유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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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돈이 많으면 좋은 건가요? 돈이 지극히 많아서 내 아이들이 그 돈을 가지고 편안한 삶을 사는 것보다 저는 일정한 노동을 함으로써 그 일에서의 보람을 느끼고,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뿌듯함을 느낍니다. 전 제 일을 사랑하고, 일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즐깁니다.”

물론 동의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일로 부터 보람을 느끼고, 또 뿌듯함을 느끼면서 자존감을 키워나가면서 사는 것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여러가지 욕구 중 하나인 성취욕을 채워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꿈꿔왔던,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던 일을 하고 있는가?

다시 물어보자. 노동선택권이 없는 당신은 정말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즐기는가? 노동선택권이 있다는 것은, 당신이 노동 여부도 결정할 수 있지만, 또한 무슨 일을 할지도 경제적인 제약 없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당신이 평상시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는데, 노동선택권이란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 그럴리는 없겠지만, 로또로 한 1천억 쯤 당첨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지금 다니는 회사를 다닐 것인가? 아니면, 회사를 관두고 수 년 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뤄놨던 일들, 공부, 골프, 육아, 운동 등을 하고 그 이후에 정말로 하고 싶었던 다른 무엇인가를 하고 싶지 않겠는가? 혹은, 사회적 재단을 만들어서 사회에 더 많은 공헌을 하지만, 지금의 일보다는 훨씬 덜 괴로운 일을 하고 싶지 않을까? 적어도 필자는 그 정도의 금액이 생긴다면, 더 이상 경제적인 제약으로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좀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을 찾아서 시도해 볼 것이다. 물론, 1천억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지속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정말로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는 사람이거나 그 일 말고는 딱히 자신이 즐길 수 있거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아직 못 찾은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일에 대한 태도가 지금과 같을까? 상사 눈치 보는 것도 상대적으로 조금 덜하고, 승진에 대한 부담, 해고에 대한 두려움도 좀 더 덜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떳떳하게 자신의 업무에 대한 소신을 펼쳐나갈 수 있는, 흔히들 말하는 생계형 직장인이 아닌 자아추구형의 직장인이 되어 있지 않겠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충분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당신이 하게될 그 일에서 당신이 최고가 될 수 있는 확률도 올라가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히려 노동선택권이 있음으로 인해 당신의 노동생산력은 더 증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당신의 자녀들을 생각해보자.

당신도 어렸을 적, 우리에게는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은 꿈을 꾸어보지 않았는가? 연예인이 되고 싶거나, 골프선수, 스케이트 선수, 수영 선수 등, 주변의 스타들을 보면서 우리 자녀들도 꿈을 꾼다. 충분히 후원해 줄 능력이 있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그 방면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면, 그리고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흥미와 관심의 다른 적성을 찾아내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당신의 자녀는 자신이 원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 방면에서 오히려 더 성공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우리들처럼 경제적 여건에 쫓겨서 주변을 제대로 못 살피고 대학입시에 치이고, 취업준비에 치이다가 대기업이나 공사 등 안정적인 직장으로만 들어가려 하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회사 들어가서 사람 구실해야지?”라고 윽박지를 수밖에 없는 부모들보다는 더 나은 부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든 선택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자주 드는 예가 있다. 물론 필자는 아직까지 비싼 외제차를 한국에서는 운전해본 적이 없지만, 한 때는 BMW의 Hard Top Convertible 모델을 꼭 가지고 싶었었던 때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친구들과 하면, 어떤 친구들은 꼭 이런 말을 한다.

“오픈카는 무슨 오픈카냐? 서울에서 날씨도 별로고 매연이나 들어오지 뚜껑을 열 일이나 있겠냐?”.

여기에 필자는 이렇게 답하곤 했다.

“뚜껑을 꼭 자주 열고 다니겠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뚜껑을 열 수 있는데 안 여는 것하고, 뚜껑을 열 수 없어서 못 여는 것하고는 분명 틀린 것 아니겠냐?”

노동선택권이 있다고 꼭 일을 하지말고 놀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제약이 없이 당신이 즐기는, 그리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권리, 무조건 갖고 싶은 권리가 아니겠는가?

 


[끝없는 월요일 – 8화] 노동선택권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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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것이 즐겁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2003년 국내 대기업의 한 자회사인 증권사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필자는 군복무기간 26개월을 여름방학을 포함해서 다녀왔기에 군 생활 기간을 포함하여 대학을 6년 만에 졸업했었고, 남자 동기들 중에서는 가장 어린 신입사원이었다.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한데다가 체격 또한 큰 편이기에, 이런 저런 사내행사에 참여하게 될 수 밖에 없었고, 사내방송 등을 통해 노출이 잦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기억해주셨다. 그러다 보니, 출근하다가, 식사다녀오다가 오가는 길에 만나는 많은 선배사원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하셨다.

“어이~ 신입사원~! 회사 재미있냐?”

혹은

“여어~ 신입사원~! 오랜만이네, 요새 즐겁게 일 잘하고 있지?”

등등의 질문이었다. 별 대단한 질문들도 아니었지만, 필자에게는 이러한 질문들이 참 고역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을 잘 숨기지 않는 필자는 거짓말을 하기도 싫었고, 입에 발린

“아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넵 즐겁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등의 말을 하기가 너무 싫었었다. 사실 잘 지내고 있지도 않았었고, 너무 갑갑하고, 아무것도 해볼 수 있는 것이 없이 정수기 물이나 갈고, 복사기나 고치고 있는 필자가 뭐가 그렇게 즐거웠겠는가? 수 주간 고민한 후, 필자는 가장 적절한 대답을 알아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그룹의 신입사원으로써는 상당히 도전적이고 버르장 머리 없는 답이었던 것 같지만, “아뇨 잘 못지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보다는 나은 듯 싶었다. 필자가 선택한 답은;

“아~ 안녕하십니까~! 아.. 회사 생활이요? 하하. 회사 생활이 재미있으면 돈 내고 다녀야죠.”

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지어보였었다.

이 말, 그 때는 큰 의미 없이 했던 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저 말은 마음속에 되뇌이고 있다. 회사 생활이 괴롭고 힘들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회사 생활이 즐거울 수가 없지, 즐거운 일은 돈을 내고 하는 거잖아? 영화를 보러가면 돈을 내듯이… 돈 받고 일할라면, 즐겁지 않고 괴롭더라도 참아야지.’

그 당시 필자는 노동선택권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냥 하루하루가 괴로웠지만, 경력관리 및 경제적인 이유로 별 다른 대안도 없었기에 괴로움을 견디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

공식2

(위의 공식에서 연봉 옆에 더 나아가 향후 증가할 연봉을 고려하려 한 것은 경력관리의 개념을 포함한 것이고, 괴로움은 그 업무로 인해 직접적으로 겪게 되는 스트레스와 개인 시간이 부족해 짐으로써 얻는 피로감, 상사나 고객으로 부터 겪을 수 있는 모멸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데서 겪는 좌절감 등의 모든 감정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래, 사람들은 저 연봉 / 괴로움이 큰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연봉이 많아야 할 것이고, 연봉이 적으면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은 직업을 선택할 것이다. 연봉이란 수치로 계산되지만, 향후 증가하게 될 연봉을 고려함에 있어서는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는 각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더욱 다를 것이다. 상사로부터의 스트레스, 자기 시간이 부족한 것에 대한 괴로움, 업무의 난이도, 고객으로부터 발생하는 마찰 등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모두 다른 크기의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따라서, 연봉 / 괴로움이란 숫자는 같은 일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수치가 나올 것이고 그 다름에 따라 각자 다른 직업을 선택하고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할만하다, 아니면 업무로 인한 괴로움에 비해 연봉이 넉넉하기에 좋은 직업이다, 또는 즐겁다라고 자기 위안을 하는 정도가 아닐까?

정말로 누군가가 자기 일을 좋아하고 즐긴다면, 저 위의 공식에 있는 분자, 즉 연봉이라는 요인이 없어도 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보자. 누군가가 당신이 현재 일하고 있는 직업에서 당신이 예상하는 정년의 나이에 이를 때까지 받을 모든 월급을 때맞춰 주고, 당신이 노력하여 얻을 승진의 효과와 동일하게 월급이 때맞춰 증가하고, 각종 모든 혜택이 회사를 다니는 것과 같은데 당신이 노동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선택권이 있다면… 당신은 회사에 나가 노동을 하겠는가? 일을 즐긴다면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자신의 일을 정말 즐겨서,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서 회사를 다니고, 노동을 팔고 있는 것일 것이다.

당시에는 이 정도를 깨달아놓고, 마치 혼자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듯 하였지만, 노동선택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난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끝없는 월요일 – 6] 노동선택권을 보유한 사람들에 언급하였던, 위로는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고, 그 테두리 안에서만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끝없는 월요일 – 7화]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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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에 필자는 부모님과 함께 강남 테헤란로를 지나고 있었다. 아버지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던 중 서초역 언저리쯤에서 아버지가 물으셨다.

“그래, 넌 회사 다니면서 맨날 돈, 돈 벌어야 한다고 떠드는데 너의 목표가 도대체 얼마냐?”

나는 대답했다.

“뭐… 아직 구체적으로 정확한 금액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돈 좀 벌었다고 할라면 한 100억은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00억이라, 그래 100억 정도면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에 진입할 수준일 것 같다. 꽤 좋은 집을 구입하고, 남는 금액으로 예금보다 조금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안전한 투자를 한다면, 넉넉한 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수입이 생길 것이고, 내가 원하는 노동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리라. 수입을 잘만 활용한다면, 나의 자식들에게도 비슷한 수준의 노동선택권도 대물림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아버지의 반응은 솔직히 좀 놀라웠다.

“100억? 야, 요즘 세상에 100억이 돈이냐? 젊은 놈이 그렇게 포부가 작아서 어디다 쓰겠냐?”

참 충격적인 반응이셨다. 아버지 또한 100억은 벌어보지도 못하셨고, 당연한 생각이지만 앞으로도 그 금액에 도달하지 못 하실 것이다. 속으로는 그냥 장난을 치시거나 허세를 부리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거 100억이 얼마나 큰 돈인데, 너무 우습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 다음 말씀은 더 놀라웠고, 그 말씀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야, 이 옆에 건물들을 봐라. 저 건물들이 한 개에 얼마나 하겠냐? 당연히 100억은 넘어보이지? 세상에 100억 정도 번 사람들은 수 없이 많겠지? 어떻게 배포가 저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 정도 되는 걸 꿈으로 가질 정도 밖에 안되냐?”

그렇다. 아버지와의 이 대화는, 사실 노동선택권의 주제와는 거리가 좀 있다. 하지만, 이 대화를 사용해서 노동선택권을 생각해보자. 서초역에서 역삼역까지 가는 동안 주변의 수많은 건물들은 어림짐작에 최소 100억원은 넘는 자산가치일 거다. 그 중 꽤 많은 건물들은 1,000억도 넘어가는 것들일 것이다. 이 건물들을 모두 대기업이나 재벌가가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많은 건물 중에 개인 소유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강남이 아니라, 서울시내 아주 많은 곳에 100억이 넘어가는 건물들은 수두룩하다. 이 건물들이 개인소유이거나 개인이 임대업을 목적으로 만든 기업의 소유라면, 그 건물들의 임대소득은 그들의 생활비를 충당하고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남을 것일테고, 이 사람들 모두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통계적으로 연구해본 적은 없지만, 수 백 수 천 정도의 극소수는 당연히 아니지 않겠는가?

그들은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노동선택권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100억–1,000억 정도를 보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에 드러날 만한 기업이나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일반사람들과 비슷한 차림을 하고 다니며, 심지어는 우리같은 일반인들보다도 더 추루하게 하고 다닐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는 돈을 많이 지닌 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많아서, 자신의 자산을 드러내지도, 주변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 섞여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우리가 알아보지 못한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며, 심지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한국부자보고서표지참고로, KB 경영연구소에서 발행한 2015 한국 부자 보고서에 의하면, 2014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개인이 약 18만 2천명이고, 이들은 평균 22억 3천만원의 금융자산을 보유한다고 한다. 또한,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전체 개인자산의 약 43.1%를 차지한다고 하니, 개인자산이 25억원 이상인 사람이 약 18만 2천명인 것이고, 이들의 평균 개인자산은 50억이 넘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자산이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 주변에도 몇몇 보유자산 가치 100억이 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금융자산만 10억을 넘게 보유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들은 저 18만명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이나 부동산은 절세 등의 목적으로 대부분 법인 소유로 되어있을 것이고, 이러한 법인들은 대부분 비상장, 비공개 기업일 것이므로, 그 법인들을 소유한 사람들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인구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저 18만 2천명에 속하지 않은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자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개인이 수십만명이면, 그 가족들의 숫자를 포함하면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자들은 아마도 1백만명, 혹은 그 이상도 될 수 있지 않을까? 10만명이건, 100만명이건, 당신이 생각하던 숫자보다는 훨씬 더 큰 숫자이지 않은가? 여전히 오르지 못할 나무로만 보이는가?

 

 


[끝없는 월요일 – 6화] 노동선택권에 의한 계층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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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선택권을 이용하여 계층을 분류하면, 1) 노동선택권 미보유자, 2) 일반노동선택권 보유자, 그리고 3)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으로 분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었다. 이로 분류된 각 계층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노동선택권 미보유자

[끝 없는 월요일 – 3화] 노동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언급된 필자의 친구 및 필자, 그리고 필자 주변의 수 많은 사람들은 노동선택권 미보유자에 포함된다. 우리와 같이, 현재의 소비수준과 향후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동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분류에 해당되므로, 굳이 따로 예를 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2)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

앞서 언급하였듯이,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는 자기 자신은 노동을 지속하지 않아도 소비를 감당할 수 있지만, 자신이 보유한 노동선택권을 대물림할 수는 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공무원생활을 30년 가량 하다가 최근에 정년퇴임하신 분을 생각해보자. 자식들은 장성하여 더이상 부모의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 없는 경우라면, 이 사람은 노동선택권 보유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 저축한 돈으로 구입한 아파트 한 채와, 보유한 어느 정도의 금융상품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매달 꾸준히 들어오는 공무원 연금이라면, 관리비를 비롯한 각종 생활비를 지출하고도 상당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수 있다. 이 분들은 필요에 의해서 노동을 유지해야 할 필요는 없다.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사학연금이나 교직원 연금, 혹은 충분한 연금보험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약간의 부동산 임대수입도 될 수 있고, 꾸준하게 투자한 기업의 주주지분에서 발생하는 배당수입도 가능할 것이고, 안전한 채권투자나 예금으로부터의 현금흐름도 물론 가능하다. 직접 투자하고 위탁으로 운영하는 식당이나 레스토랑의 꾸준한 현금흐름도 마찬가지이고, 커피숍이나 다른 상가들에서의 현금흐름도 그 사업을 운영하는데 추가적인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상태이고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창출된다면 이 또한 충분하다. 이와 같이 꾸준한 현금흐름을 보유한 사람들은 굳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노동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으므로 노동선택권을 보유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

이 계층은 굳이 계층으로 표현하였다. 우선 진입하기도 힘들지만, 일단 진입하고 나면 그 상태를 유지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주변에서 쉽게 찾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상당수가 존재한다. 그들은 일반인보다 월등히 많은 자본력을 가지고 자신의 노동력을 공급하여 얻을 수 있는 노동소득보다 더 많은 자본소득을 얻고 있다. 이러한 자본소득이 충분하기에, 자신이 소비하는 부분을 제외 한 후, 상속이나 증여를 고려하여도 그 다음 세대로 지금 현재 수준의 혹은 그보다도 더 많은 자산을 물려줄 수 있으며, 그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 등도 노동선택권을 보유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이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이 지극히 극소수이고, 또한 우리가 그들의 계층까지 오를 수 없다고 쉽게 단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황태자라 불리는 이재용, 땅콩회항으로 구설 수에 올랐던 조현아나, 아니면 최씨, 구씨나 허씨 집안 등의 재벌가의 2세나 3세이어야만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면, 지극히 극소수이고 오르지 못할 나무로 보이는 것도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인 부자여야만 노동선택권을 보유하는 것일까?

필자 주면의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계층에 대한 용어는 필자의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현대사회의 계층 구조는 아래의 그림인 듯 하다.

피라미드5

즉, 극소수의 재벌과 일반사람들로 분류하고, 그 중간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단절된 것으로 느껴서 아무나 오를 수 없는 단계라고 느끼는 듯 하다. 또한,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다고, 스스로가 현재 상태, 즉 노동을 팔아서 삶을 유지하여야 하고 이를 대물림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듯 하다. 그러기에 재벌가의 횡포 및 비도덕적 행동들에 대해서 불평 불만을 토로하고는 있지만, 자신이 좀 더 도전적이고 노력해야 오를 수 있는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으로 오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주변에서 볼 수 있고 그나마 손 쉬워 보이는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 수준에서 만족하려 하며, 땀 흘려 노동하는 것이 보람이다 등의 말을 인용하여 자기 자신을 위안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노동 자체를 신성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위의 구름낀 빈 공간에도 분명히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끝없는 월요일 – 5화] 현대 자본주의 제도 下의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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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제도가 유지되는 현대 사회에도 계급이 존재할까? 각 계층간의 이동이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 한 것은 아니기에 계급사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라는 분류는 하기 힘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을 둘다 누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에게는 노동소득이 주소득이지만, 은행예금, 주식투자 등의 금융거래로 부가소득을 얻는 경우도 있고, 상가, 아파트, 오피스텔 등으로 임대소득을 얻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계층은 존재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층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금융자산 10억 이상, 연 수입 1억 이상 등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부자를 정의, 이 정의에 의해 사회의 새로운 계층을 설명하려 하지만, 충분한 기준이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사람은 20-30억대 자산가라 할 지라도 일에 쫓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방에서는 20-30억대 자산가라 하면 굳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여유와 그 자산의 상당부분이 상속도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선택권 (Labour Option) 이라는 개념으로 현대사회의 계층을 분류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래와 같이 계층을 분류할 수 있다.

노동선택권의 개념을 설명하자면, 간단히 말하여서 노동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즉, 1) 노동선택권을 보유한 자는 스스로 노동을 것인지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있는 사람이며,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2) 노동선택권 미보유자는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지속하여야만 하는 사람이다.

노동선택권 보유자는 다시, 1)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3)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자로 분류될 수 있다. 즉, 노동선택권 보유자들 중, 해당 세대가 노동선택권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그 자식에게 상속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가 있을 것이고, 반면에 노동선택권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지속적으로 다음 세대에게 상속할 수 있는 계층이 존재 할 것이다. 이를 모두 포함하면 아래와 같은 계층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laboroption1

캘리포니아 대학의 밸러리 레이미 (Valery Ramey) 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네빌 프랜시스 (Neville Francis) 는 1900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서의 근무시간, 가사활동, 여가시간, 수업시간등을 조사해 통계를 냈는데 105년 동안 휴식시간은 결코 늘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부르주아 혁명 이후에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으로 구분되던 계급사회는 그 경계가 모호해짐으로 인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되긴 하지만, 여전히 그 경계를 넘어서기 힘든 계층사회가 존재한다. 사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기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체계의 전폭적인 변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선택권을 물려받지 못한 노동자 계층은, 부르주아 혁명 직후의 노동자계급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노동을 팔아 생활을 유지하여야 하며 그들의 삶은 적어도 근무시간 대비 휴식시간 기준으로는, 지난 100여년 동안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반인이라 부르는 우리 노동선택권 미보유자들은, 일반 노동선택권 보유자까지는 오를 수 있을지 몰라도, 노동선택권 보유 및 상속가능 계층까지는 웬만해서는 오르기 힘들다. 끊임없는 노력과 계획, 그리고 상당한 운도 따라줘야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한 세대가 은퇴 시점 언저리에 노동선택권을 보유하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2세와 자손들은 다시 노동시장에서 노동을 팔아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노동자 계층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끝없는 월요일 – 4화] 자본가 계급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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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는 서양의 문화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수용하면서 일어났다. 갑오경장과 을미개혁 이후, 신분제도가 폐지되기 시작하면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개최되고 노비 해방을 결의, 시민운동을 해 나갔었지만 1899년 황실에 반역하는 단체로 몰리는 등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 했다고 한다. 이후, 일제시대에 먼저 서양화된 문물을 지닌 일본과 기타 외세의 영향을 받으면서 계급사회가 사라졌기에, 현대 사회의 사회계층을 이해하려면 서양의 부르주아 혁명에 대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french1부르주아지 ( Bourgeoisie) 란 자본가 계급을 일컫는 말이다. 중세 시대 도시에서 생활하던 프랑스 시민들은 농사보다는 상업이나 공업에 종사하는 상공업자들이 대부분으로 “성 안에 사는 사람들” 이었다. 이들이 17~18세기 사유재산을 가지게 되면서, 왕이나 귀족들의 무분별한 세금부과에 반발, 다양한 혁명을 일으키면서 시민사회가 발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노동 이외의 생산수단을 보유한 시민들이었기에 유산계급, 혹은 자본가라고 불리게 된다.

무산계급이라 불리는 프롤레타리아 (Proletirai) 는 독일어로, 라틴어인 자식 (Proles) 라는 말을 그 어원으로 하며, 자식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들, 즉 노동자 계급은 유산계급에 의한 착취로 러시아 혁명과 같은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공산주의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 되었다.

자본가 계급은 경제학적으로 생산의 2 요소라고 불리는 자본과 노동 중, 자본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노동자 계급의 노동과 결합하여 자본소득을 창출해 왔다. 한정된 노동을 공급하여 얻을 수 있는 노동소득에는 한계가 있는 반면, 자본은 무한히 증가할 수 있으므로, 자본소득으로 그들의 자본을 더욱 축적시킬 수 있으며, 이론적으로 끝없이 증가할 수 있다.

반면 부르주아 혁명 이후이건 현재이건, 노동자는 유한한 자원, 즉 시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을 무한히 사용할 수 없다. 그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24시간 이상 일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임금을 지급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교환가치는 임금이며, 이 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비 및 양육비용과 기능 습득에 드는 비용을 합한 금액, 즉 노동자가 매일 건강하게 다시 일할 수 있는 상태로 육체적, 정신적인 재충전을 시켜줄 수 있을 정도의 필요한 금액이라고 표현한다. 생산활동으로 인한 이윤의 대부분은 자본가가 차지하고,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임금만을 지급받는 노동자들은 필요한 지출을 하고 나면, 여분의 금액을 모아서는 생전에 자본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산의 필수 요소인 자본은 자본가와 노동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부르주아 혁명 이전의 귀족과 같은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계급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부익부 빈익빈이 될 수 밖에 없었기에 새로운 계급이 탄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