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월요일 – 3화] 노동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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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는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대기업을 다니는 아버지 밑에서 강남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단한 노력으로 지방의 유명 공대에 1997년 입학하여, 전기/전자/컴퓨터공학을 전공하였다. 물론 대학생활도 그다지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대학생 과외도 했으나,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기간을 포함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2004년이었고, 졸업 전 취업 준비에 충실했던 그 친구는 누구나 부러워할 국내 굴지 대기업의 전자회사에 취업하였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났다. 필자와 마찬가지로 그 기간동안 그 친구는 결혼을 하였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다. 수 년전 그 친구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금확보를 위해 이리저리로 발품을 팔던 때가 생각난다. 결혼식 비용, 전세자금 등을 마련하느라, 회사에서 직원에게 지원해주는 대출금 위주로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아직 미혼이었고, 약간의 저축이 있었던 필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자기 스스로 구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모자라게 된다면 긴급하게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었다. 믿는 친구이기에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말했었고, 그럴 준비도 해놓고 있었지만, 그 친구는 빠듯하게나마 스스로 모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필자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회사는 수도권에 있는지라 값 비싼 강남에는 그들의 보금자리를 틀 이유도 없었지만, 강남에 살만큼 여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대기업이라지만, 대략 연 7천만원 정도의 수입으로 대출이자와 두 아이의 교육비, 그리고 생활비를 지출하고나면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은 많지 않다. 78년생인 그 친구는 만 65세 이후에나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겠지만, 만 60세까지 근무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거의 없다. 경쟁은 심하고, 임원자리는 부족한지라 임원까지 승진을 못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만 55세가 되기 전에 싫으나 좋으나 퇴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하고 있는 일이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지만, 매일매일 출근하는 것이 힘들지만, 그리고 그 이후에 필요한 자금마련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이 친구에게는 하고 있는 일을 관둘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즉, 노동선택권이 없다.

필자의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고, 위 이야기 속의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그리고 지금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그리고 보다 나은 주거 및 교육 등의 생활환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갖은 힘을 다하고, 저녁에는 거래처다 내부회식이다 술자리에서 몸을 상하거나 곧 다가올 프로젝트 마감을 위해 야근을 하는 것이 흔하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고사하고 가족을 위한 시간도 부족하다. 하지만 현실은 더 비참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벌어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관둘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금여력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고, 대부분이 정년 이전에 퇴사를 하게 된다면 심각한 경제적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아니, 정년까지 버텼다 하더라도 상황이 그다지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노동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지속해야 하는 필요조건이고, 그러기에 이러한 상황에 처한, 노동선택권을 보유하지 못한 우리에게 월요일은 끝없이 돌아온다.


[끝없는 월요일 – 2화] 현대사회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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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어느 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더 무거운가 등… 그리고 쇠사슬에 묶여 있지 않은 자유인을 비웃기까지 한다. 하지만 노예들을 묶고 있는 것은 사실 한줄의 쇠사슬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예는 어디까지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노예는, 자유인이 힘에 의해 정복되어 어쩔 수 없이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일부 특혜를 받거나 한 자를 제외하면 노예가 되더라도 결코 그 정신의 자유까지도 양도하지는 않았다. 그 혈통을 자랑하고, 선조들이 구축한 문명의 위대함을 잊지 않은 채, 빈 틈만 생기면 도망쳤다. 혹은 반란을 일으키거나, 노동으로 단련된 강인한 육체로 살찐 주인을 희생의 제물로 삼았다.

그러나 현대의 노예는 스스로 노예의 옷을 입고 굴욕의 끈을 휘감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랍게도, 현대의 노예는 스스로가 노예라는 자각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노예인 것을 스스로의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기까지 한다. ”

– 극작가 리로이 존스 (LeRoi Jones), 1968년 뉴욕 할렘에서

 

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참 가슴에 와 닿는 말인 것 같다.

얼마 전 한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다. 임원들과 같이 하는 회식자리에서 한 부장급 인사가 임원들과 대화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임원이네 부장이네 해도, 사실 따지고 보면 X씨 집안 (오너 집안) 노비들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임원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노비? 노비라고? 당신이 노비급에나 끼겠어? 사장단이나 임원급은 되어야 노비 근처라도 가지, 당신들은 소나 말 정도 아니겠어?”

맞는 말인 듯 하다. 조선시대 노비들이라고 하면, 적어도 주인어른 얼굴이라도 본 적이 있을 것이고, 주인 댁 가족들도 얼굴보면 아 이 노비는 우리집 노비인 것 같은데? 정도는 생각했을 것이다. 반면에, 일반 대기업 부장급 인사가 오너 집안 가족을 봤을 경우가 흔치 않으니, 오너 일가가 못 알아보는 그들은, 굳이 비교하자면 그들은 노비보다 못한 존재, 소나 말? 아니다. 주인 어르신은 말 얼굴도 자주 보시고 자신이 타던 말이 아니면 아니라는 사실도 인지하실 것이다. 소? 소도 큰 자산의 하나이므로 얼굴을 알아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마도 닭?

부장이 저 정도라면 일반 사원들은 어떤가? 주인 댁 가족들이 부리는 그 노비가 부리는 그 밑의 존재… 낫이나 호미 정도의 아예 사물일 수도 있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인격적으로 모욕하려 한 것이 아니라, 오너 집안의 눈에는 우리가 그 정도 하찮은 존재일 지 모른다는 필자의 생각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죽어라 노력해서 대기업에 입사하고 난 후, 어디 그룹 직원이라 소속감을 뿌듯해하는, 그리고 내심 뽐내는 우리가… 따지고 보면 사실은 하나의 톱니바퀴 보다도 못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 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자산을 불려주기 위해 일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받는 월급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소비로 대부분을 지출하고 있는 우리들이, 쇠사슬을 자랑하고, 스스로 노예임을 자랑하고 있는 리로이 존스의 글에 나온 노예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이는 건, 필자만의 생각인가?


[끝없는 월요일 – 1화] 칼럼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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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의 어느 월요일, 필자가 살고 있는 홍콩의 미드레벨에서 출발해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근을 시작한다. 2주 간의 긴 휴가를 마치고, 회사가 있는 청콩센터(Cheung Kong Center)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월요일은 항상 마음이 무겁고 또 괴로우며, 특히 휴가 이후의 월요일이라면 더 그러할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보통 일요일 밤에는 회사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꿈을 자주 꾼다. 기분도 꿀꿀한 상태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놈의 괴로운 월요일은 정말 앞으로도 끝 없이 오겠구나.’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월요일 출근길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몇몇 가혹하게 일을 시킨다고 소문난 대기업들은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이라고도 하던데, 그런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월요일이라고 특별히 더 힘들 것 같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주말은 그래도 쉴 수 있는 우리의 삶보다 훨씬 더 힘들고 팍팍한 삶을 살고 있으리라.

그 날 출근길에 건물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피는 순간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월요일이 힘든 것은 대부분의 직장인의 비애일 것이다. 이런 괴로운 월요일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은퇴하는 그날까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자식들마저도 또 매주 월요일을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하게 될 것이다. ‘끝없는 월요일’이라는 본 칼럼의 제목은, 자기 사업이 아닌, 자기 회사가 아닌, 남의 회사에서 월급쟁이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며, 그러한 서글픈 운명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물론, 필자의 아직은 미천한 인생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끝없는 월요일을 벗어나서 매일 금요일이나 토요일 같은 삶을 살기는 쉽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루지 못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포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착실히 진행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고, 혹 우리 세대에서 못 이룩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노력이, 우리의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세대에서라도 남의 회사에서 월급쟁이로 일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칼럼으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이 “끝없는 월요일”이라는 칼럼은 매주 월요일, 필자가 수 개월, 아니 수 년에 걸쳐서 느낀, 왜 월급쟁이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일까? 혹은, 행복하지 못한 월급쟁이는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대해서 논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며, 필자가 명명한 노동선택권 (Labor Option) 에 대한 정의와 의의, 그리고 행복하지 못한 월급쟁이를 벗어나는 개념적 이해를 돕고자 시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