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경영권분쟁과 금융소비자원의 불매운동

Lotte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당부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필자는 롯데그룹 및 그 소유주들인 신씨 일가를 옹호하려는 입장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여느 재벌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그 기업지배구조나 고질적인 정경유착,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선되어야하고, 더 투명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이 우리나라 자본주의 질서 확립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롯데家의 이야기로 연일 언론이 시끌벅적하다. 알고 보니 그 소유주들이 한국말도 어눌한 일본 사람들이더라, 기업의 순익이 상당 부분 일본으로 넘어가는 구조더라, 아예 일본회사라고 봐야한다더라, 기업지배구조가 그 어느 회사보다 불투명해서 순환출자를 분석하기조차 힘들더라 등등 다양한 비판과 실망섞인 기사들이 연일 실시간 검색창에 오르고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필자가 알고 있던 롯데라는 기업은 이랬다.

  • 제과를 중심으로 관광, 건설산업 및 기타 다양한 산업에 문어발식 확장을 한 대기업집단
  • 재일교포인 신격호 회장이 일본에서 설립해서 다시 한국으로 역진출한 기업집단
  • 기본적으로 주식공개를 안 하는, 폐쇄적인 경영스타일을 유지하는 비상장 원칙의 기업집단
  • 일본과 한국 양국에 프로야구 팀을 후원하는 기업집단

사실 이 정도였다. 롯데라는 기업이 순수 우리나라 기업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그 사실 자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롯데캐슬 아파트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인기 아파트이고, 먹거리 이것저것 만들고, 롯데월드는 어렸을 때는 종종 갔었지만 지금은 나이들어서 가기도 좀 뭐한 곳이고, 롯데시네마도 자주 이용하진 않았었지만 가끔 있으면 갔었고… 뭐 그 정도였다. 그런 기업에서 형제간에, 가족간에 경영권분쟁이 일어났고,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다. 어차피 나와는 별로 관계도 없는 일이려니 하고 있었고, 신동빈이 첫째인지 신동주가 첫째인지, 누가 누구 편인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었다.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재벌 집안 내의 경영권분쟁이 그 기업이 어느 나라 기업이냐에 대한 논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매운동이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사실, 지난 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즈음해서의 태도와는 확실히 다른 언론의 태도부터 관심이 가기 시작하긴 했었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에는 대부분의 언론들이 재벌의 경영권승계를 위해 소수주주의 권익 침해보다는 엘리엇이라는 외국계 투기세력에 대한 애국심 코스프레로 대놓고 이씨 일가 편을 들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롯데家의 경우에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모든 언론이 비판적인 기사만 쓰고 있었기에 그냥 롯데는 힘있는 광고주가 아닌가 보구나, 언론과 이해관계가 별로 없나보구나 정도만 생각했고, 그들이 충분히 비판하고 있기에 필자가 별도로 비판할 이유도 별로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좀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다. 지난 십수년간, 경영권분쟁을 한다고 불매운동을 했던 경우는 기억에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경영권분쟁은 보통 주식시장 참여자들에게 좋은 재료가 되고, 주가는 보통 상승하는, 전형적인 호재로 작용한다. 거기다가 이번에 불매운동을 주동하는 두 단체는, 금융소비자원이란 들어본 적 없는 사단법인과 소상공인연합회라고 한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그간 롯데마트로 인한 골목상권 논쟁, 롯데 제품들의 떠넘기기 등으로 쌓였던 불만이 지금 터져나왔다고 생각해보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금융소비자원은 도대체 롯데의 불매운동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금융소비자원의 소개글을 보니,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다.

“금융소비자원은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와 합리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며, 금융산업과 산업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롯데불매운동그리고, 옆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신력이 있는 기관이라기에는 뭔가 섬뜩한 느낌의 불매운동 공지가 떠 있다. 금융소비자원이라는 단체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금융소비자와는 별로 관계 없어 보이는, 롯데의 경영권분쟁을 계기로 재벌의 양아치 행태에 대한 심판이란다. 국민과 시장이 ‘가족의 치부 수단’이라고 소비자가 심판해야 한다고 한다. 뭐, 금융소비자와는 관계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 기업지배구조가 더 나아져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다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은 갈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들의 불매운동은 오히려 롯데그룹의 주가를 하락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고, 금융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일부 소수주주의 손해로 연결될 것이다. 뭐 그래도… 그렇다 치자.

이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아래 금융소비자원의 보도자료 목록에는, 보다시피 정작 금융소비자원이란 곳이 더 관심가지고 열심히 활동했었어야 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관련해서는 단 한 건의 보도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수주주의 권익에 대한 언급이라던가 합병의 부당함 등에 대해서는 커녕, 그 합병에 대해서는 찬성이건 반대건 그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았었다. 왜, 금융소비자원이라는 단체가 금융소비자보다 일반 소비자의 불매운동에 더 적극적일까?

 

금융소비자원알고 보니 일본기업이니 사지 말아야 한다고? 이 역시 금융소비자와는 별 관련 없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롯데그룹의 제품들은 대부분이 Push Marketing을 하는 제품들이라서 삼성전자의 가전제품이나 현대자동차의 자동차 같이 고객이 직접 찾아가서 구매해야하는 고가의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소매채널에 제품을 더 많이 깔아서 사람들의 손에 가까이 닿게 하는 것이 그 성공의 열쇠이다. 소비자는 마가레트나 빼빼로 같은 상품은 구매시점에 선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언제 국산 과자라고 국산 음료라고 국산품 애용을 외치면서 사먹어 본 적이 있는가? 가게에 가서 눈에 띄는, 그 순간순간 맛있어 보이는 과자나 음료를 고르는 경우가 보통 아닌가? 솔직히, 마가레트나 빼빼로가 롯데 제품인지 아닌지 신경도 안 쓰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아니면, 롯데마트가 한국 기업인 줄로 알고는 있었다지만, 코스트코 대신 롯데마트 가면서 애국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을까? 맥도날드 햄버거 대신 롯데리아 버거 먹으면서 국산품 애용이고 국내 기업 물건 팔아준다고 생각하면서 먹었었나?

불매운동을 하건, 비판을 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리고, 필자도 그로인해 롯데라는 재벌의, 그리고 국내 재벌들의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면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왜 삼성 때는 아무말도 못하고 있던 단체 및 언론들이 롯데 때는 봇물터지듯이 떠들기 시작하는 것인가? 과연 당신들은 객관적인 단체이고 언론이며 같은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인가?